영화가 끝났는데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작품이 있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이 그렇다.
처음에는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살인사건을 다룬 공포 영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누가 선이고 악인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조차 혼란스러워진다.
특히 결말에서 종구가 무명의 경고를 무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에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딸을 구할 수 있었을까? 일본인은 정말 악마였을까? 무명은 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을까?
이 질문들을 영화 속 장면과 복선을 통해 다시 살펴봤다.
※ 영화의 결말과 주요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일본인의 정체, 피해자처럼 보였던 악의 실체
곡성에서 가장 먼저 의심받는 인물은 구니무라 준이 연기한 일본인이다.
그가 마을에 나타난 이후 기괴한 사건들이 이어지고, 종구가 그의 집에서 발견한 피해자들의 사진과 효진의 물건은 의심을 더욱 키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종구 일행에게 쫓기는 일본인은 두려움에 떠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인다. 산에서 도망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그가 억울한 피해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 장면의 흥미로운 점은 관객도 종구와 똑같은 혼란을 겪는다는 것이다. 수상한 증거를 보고 일본인을 의심하면서도, 막상 겁에 질린 모습을 보면 판단이 흔들린다.
그러나 영화 후반 동굴 장면에서 일본인은 악마를 연상시키는 본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부제 앞에서 정체를 드러내고 사진을 찍는 행동은 앞서 발견된 피해자들의 사진과 연결된다.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희생자를 지배하거나 자신의 악행을 남기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결국 일본인이 악한 초자연적 존재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무서운 것은 그가 얼마나 기괴하게 생겼느냐가 아니다. 관객이 그를 의심했다가 동정하고, 다시 의심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곡성의 악은 사람을 공격하는 동시에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는 능력까지 흔들어 놓는다.
2. 무명의 정체, 왜 선한 존재를 믿기 어려웠을까?
천우희가 연기한 무명은 일본인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녀는 종구에게 위험을 경고하지만 자신의 정체는 설명하지 않는다. 나타나는 방식도 기묘하고, 피해자들과 관련된 물건까지 가지고 있어 쉽게 신뢰하기 어렵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다시 보면 무명은 종구의 가족을 보호하려던 존재로 해석할 근거가 충분하다.
특히 집 주변에 놓인 금어초가 중요한 단서다.
무명은 종구에게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종구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떠난 뒤 금어초는 시들어 버린다.
이 장면은 무명이 준비한 보호 장치가 무너졌음을 암시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일본인과 무명의 행동이 관객에게 정반대의 인상을 남긴다는 점이다.
일본인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 동정심을 유발하지만, 무명은 도움을 주면서도 오히려 불안감을 준다.
결국 종구는 자신을 도우려는 존재를 의심하고, 위험한 존재의 편에 선 사람의 말을 듣게 된다.
선과 악을 겉모습이나 말투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보다 섬뜩하게 표현될 수 있을까.
3. 일광의 굿 장면, 관객까지 속인 교차 편집
황정민이 연기한 일광의 굿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 중 하나다.
격렬한 북소리와 춤, 반복되는 의식이 이어지고, 그 사이 일본인이 별도의 의식을 진행하는 모습이 교차해서 등장한다.
처음 볼 때는 일광과 일본인이 서로 주술 대결을 벌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두 장면이 번갈아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두 사람이 서로 공격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결말을 알고 다시 보면 다른 가능성이 보인다.
일광의 굿이 진행되는 동안 효진은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일본인의 의식 역시 종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대상을 향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일광이 무명을 보고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장면과 마지막에 피해자들의 사진을 수습하는 행동까지 연결하면, 일광이 일본인과 연관된 인물이라는 해석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소름 끼쳤다.
영화는 등장인물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편집을 통해 관객까지 잘못된 결론으로 유도한다.
우리는 일광이 효진을 구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정작 그 의식이 무엇을 향하고 있었는지는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이 장면은 곡성이 단순히 반전이 뛰어난 영화가 아니라 관객의 판단 과정 자체를 이용하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4.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돌아간 종구,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영화에서 가장 마음이 아픈 장면은 종구가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무명은 기다리라고 하고, 일광은 무명을 믿지 말라고 경고한다.
문제는 종구에게 어느 쪽이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관객은 결말을 알고 난 뒤 종구에게 왜 조금만 더 기다리지 않았느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 종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딸 효진이었다.
집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의 말을 믿고 가만히 있는 일이 과연 쉬웠을까?
종구가 떠난 뒤 금어초가 시들어가는 장면은 그의 선택이 보호의 실패와 연결되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끝까지 기다렸다면 가족이 반드시 살아났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영화는 그 가능성을 암시하지만 실제로 벌어지지 않은 결과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더 잔인하다.
종구는 딸을 포기해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니다.
딸을 살리고 싶다는 절박함 때문에 더 기다리지 못했다.
그 마음이 이해되기에 관객도 결말 앞에서 쉽게 누군가를 비난하지 못한다.
5. 곡성 결말의 진짜 공포는 무엇이었을까?
영화 곡성은 마지막까지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관객을 흔든다.
일본인의 정체가 드러나고, 일광의 행동이 수상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나서도 후련하지 않다.
이미 비극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의 진짜 공포가 귀신이나 악마 자체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인간의 무력함에 가깝다.
종구는 무능하고 성급하지만, 딸을 구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런 평범한 아버지가 자신이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무너지는 과정이 너무나 안타깝다.
특히 무명의 말이 옳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 관객은 종구와 함께 절망하게 된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자꾸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내가 종구였다면 정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6. 영화 곡성 후기, 결말을 알아도 여전히 무서운 이유
곡성은 한 번 보고 모든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다.
그렇다고 단순히 불친절한 작품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가 관객에게 경험시키려는 감정 자체가 혼란과 의심이기 때문이다.
처음 볼 때는 일본인의 정체가 궁금했고, 두 번째로 생각할 때는 무명이 왜 종구를 설득하지 못했는지가 안타까웠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종구의 선택보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곡성은 악마의 존재를 보여주는 영화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잘못된 확신에 빠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마음조차 비극을 막지 못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영화 곡성이 결말 이후에도 오래도록 남기는 공포라고 생각한다.